산과 인걸(人傑) 만날 때 완성되는 승지가(勝地歌)

[제25회 소원회전시회 : 계룡산인걸지령 계룡전]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19/05/22 [15:48]

산과 인걸(人傑) 만날 때 완성되는 승지가(勝地歌)

[제25회 소원회전시회 : 계룡산인걸지령 계룡전]

놀뫼신문 | 입력 : 2019/05/22 [15:48]

▲     © 화요저널




제25회 계룡산 인걸지령 계룡전이 5월 25~29일 계룡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 소원회의 서예·문인화가 14명이 각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주제를 70여점의 작품으로 승화시켜 완성한 역작의 전시회이다.   

계룡산(鷄龍山)과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는 이름이 다소 묵직하게 보인다. 단순한 서예, 문인화 전시분위기가 아님은, 작품의 예술성에서도 그러하지만 기록된 내용으로 들어갈 때 더 실감키워진다. 계룡산 인근에는 영험한 계룡산 정기가 배출한 인걸들이 즐비하다. 유명 무명의 성현들 한시와 글, 교훈적인 사연, 사찰, 지명의 유래, 동식물, 민속놀이, 무속신앙,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가 <鷄龍山 人傑地靈>에 담겨 있다. 

이번 전시회 작가들은 소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충남 대전권이지만, 특히 계룡산을 중심 멤버들이다. 계룡시 개청, 계룡문화예술회관 개관 서예포퍼먼스를 진행했으며 현재 계룡서예원을 운영중인 김태호 회장의 소개말을 들어보자. “소원(溯源)은 ‘물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으로 사물의 근원을 따져 밝힌다는 의미입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지향하는 청년 정신의 반영이죠. 1995년 대전중구문화원 창립전 이후 4반세기에 이르는 관록있는 모임입니다.”

김회장은 이렇게 서두를 꺼내면서, 소원회가 대전에서 출발했지만 본인 고향인 논산계룡 전시회도 다수 개최하였음에 방점을 찍는다. 2006년 제12회 소원회전은 사계 김장생 선생 추모전이었다. 계룡시청 전시실에서 개최한 다음, 논산문화예술회관으로 이어갔다. 논산에서는 18회때도 열렸다. 제13회는 신동엽 선생 추모전이 열렸고, 이번에도 신동엽 님의 <어느 해의 유언>이 전시되어 있다. 15회는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전을 열었다. 16회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전, 17회는 “통일 두드림, 그리고 Do Dream”으로 다소 진보적인 색채도 띄었다. 제24회 소원회전은 2018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원 한국의 명찰 태화산 마곡사를 주제로, 작년 이맘때 마곡사 경내 야외전시장에서 열었다. 

올해는 계룡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계룡산 인근은 유교부터 볼 때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토 윤선거, 명재 윤증, 초려 이유태, 고청 서기 선생 등 유수한 인물들이 배출된 곳이다. 이에 걸맞게 돈암서원, 충현서원, 용문서원, 도산서원, 진잠향교, 연산향교, 노성향교 등의 굵직굵직한 교육기관들이 산재해 있다. 계룡산은 수운 최제우의 동학과 일부 김항의 정역 등 우리나라 고유 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걸들 작품이 이번 전시회에서 소원회를 통하여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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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역사와 사계를 오롯이 

 

전시회 이름답게 계룡산이라는 주제를 여실히 펼쳐내고 있다. 평천 이상민의 계룡산 승지가(勝地歌)와 박상용선생 시 <계룡8경>, 백암 윤용균 / 봉우선생 글 중에서 <십승지 (十勝地)>, 도계선생 시 <계룡귀로鷄龍歸路>, 효민 이중우의 계곡선생 시 <계룡방은鷄龍訪隱>, 自吟의 계룡산 소확행(小確幸), 논산8경, 그리고 여암 최익성/ 남하정 님의 구句 <계룡기행記行> 등등에서 보다시피 계룡산이 총망라되는 분위기이다. 

계룡산 주변의 유학자의 작품도 소환되었다. 김장생선생 시조, 김집선생의 시 <獨臥>, <춘효>  명재 윤증 선생의 구句 <덕업德業 충효>, 시 <새벽에 앉아서>, <送 行至錦江而別 丙午> 등이 그것이다. 의천 이호직은 이삼장군의 <聖主鴻恩歌>를 썼다. 최재우 선생 <동경대전> 중 <좌잠座箴>, 동학지본대천주(東學之本侍天主)와 정역 대역서구(大易序句) 등은 계룡산스러운 종교 분위기이다. 

계룡산과 인걸과의 상관성을 좀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는, 이번 전시회를 기념하여 김용수 조각가가 계룡산 기슭 무심산방無心山房에서 기고한 글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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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도 인걸을 만나야 빛난다

 

일설에 백두산 신령과 계룡산 신령은 동급이라 한다. 명산명찰(名山名刹)이란 말처럼 계룡산 품속에 네 사찰이 있었다. 동(東)동학, 서(西)갑사, 남(南)신원, 북(北)구룡사가 그것이다. 동학사에서 선사(禪師) 경허를 내었고, 갑사는 승병장 영규대사로 이름이 높다. 신원사에는 역사적인 조선 중악단(中嶽壇)이 남아 있어 매년 4월이면 산신제를 봉행한다. 구룡사는 사세(寺勢)를 짐작케 하는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오늘의 계룡산이 계룡산인 까닭은 그 하나가 근세 민족사상을 잉태하는 일부 김항(一夫 金恒 1826~1898)의 정역(正易) 때문이요, 그 둘은 조선 선풍을 회생시킨 경허선사(鏡虛禪師 1846~1912)를 낳았기 때문이다. 일부와 경허는 각각 계룡산 서쪽과 동쪽 자락에서 정역을 완성하고, 대각(大覺)을 이룸으로써 시들어 가던 조선에 혼불을 쬐인 것이다.

‘산천도 인걸을 만나야 빛난다’ 했듯이 두 사상가로 하여 백척간두 조선의 정신사가 가녀리게 숨을 쉴 수 있었으나, 오늘 우리는 물질에 묻혀 그 고마운 숨결을 잊고 산다. 계룡산 그 어디에도 두 사상가를 기리는 푯말 하나가 없다. 오히려 일부 선생이 정역을 매듭짓고 후학들이 뜻을 이어 공부하던 향적산방은 개발에 밀려 허물린다고 한다. 

이 두 사상가가 중요한 것은 신흥종교 같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을 넘어서, 인류보편의 사상적 맥락을 되짚어 되살린 데에 있다. 경허의 지도 아래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나왔다. 수월, 혜월, 만공, 한암, 고봉 등 한국 선풍을 휘날린 인물들이다. 

국사봉 그 아래에 근세 도인 김일부 선생의 공부터 향적산방이 자리잡고 있다. 김일부는 선천 역(주역)은 음을 누르고 양을 높이는(抑陰尊陽) 심법지학(心法之學)으로 불평등한 세계를 품고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정역을 세웠다. 이는 양을 고르고 음을 맞추는(調陽律陰) 성리지리(性理之理)학의 수평적 평등, 조화사상으로 역사전환기에 시대적 사명에 부응함으로써, 민족의 자긍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일부는 수운 최제우와 함께 후천개벽의 일성을 제시하여, 풍전등화의 조선의 운명과 도탄 속의 민중에게 새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이다. 계룡산은 말이 없으나, 그 품에서 숨은 선비가 다시 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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