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의 역사

화요저널 | 기사입력 2019/07/22 [13:05]

돈암서원의 역사

화요저널 | 입력 : 2019/07/22 [13:05]

▲ 거경재와정의재  © 화요저널



사적 제383호인 돈암서원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 중기 예학파 유학자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1634년(인조 12년) 김장생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돼 1659년(효종 10년)에는 김집, 1688년(숙종 14년) 송준길, 1695년에는 송시열을 각각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1660년(현종 1) 사액된 호서지방의 대표 서원으로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돈암은 서원 서북쪽에 '돈암'이란 큰 바위가 있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사당(숭례사)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네 분의 위패를 봉안 하고 있다.

국가보물 제1569호 응도당(강당)은 유생들을 가르치던 강당으로 건물의 규모나 익공의 화려함, 화반의 아름다움이 국가 문화재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내삼문, 양성당, 정회당, 장판각 등 조상의 숨결이 새겨진 많은 유물들이 나그네가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게 하기에 충분하다.

 

▲ 한옥마을  © 화요저널

 

▲ 내삼문  © 화요저널

 

▲ 돈암서원원정비  © 화요저널

 

▲ 사적비  © 화요저널



▲ 참고 산앙루  © 화요저널

 

▲ 장판각  © 화요저널

 

▲ 홍살문과하마비  © 화요저널



논산시는 국비 총 109억4700만원이 투입해 지난 2014년부터 서원 보수정비를 비롯해 한옥마을 조성과 예학관 및 유물관 건립, 도로 정비 등을 실시했다.

내년 초 개장될 것으로 알려진 관광객들이 유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 3동의 한옥마을(숙박촌)은 기호유학 본산에 걸맞게 선조들의 지혜와 삶을 체험하고 전통문화가치와 예학 체험 명소가 될 전망이다. 

유교에 관련된 교육을 강의 위주로 실시하는 예학관과 돈암서원에 보관돼 있는 유교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유물관도 돈암서원의 전통문화 가치를 현대인들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인문학강좌, 돈암서원 예(禮)스테이, 예학교실 등 예(禮)체험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385년의 역사를 이어 온 돈암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제 선조들의 지혜와 삶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문화유산 관광자원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돈암서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는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지난 2015년 유네스코는 돈암서원이 현 장소로 이전(移轉)한데 대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보강 서류를 요구했다.

김선의 돈암서원 장의는 "그 때 한국서원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인 이배용 브랜드위원장(현 서원관리단 이사장)께서 모든 서원이 합심해서 난관을 돌파하자고 했다"며 "서원관계자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심기일전, 초심으로 돌아가 유네스코실사를 대비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그러나 돈암서원은 영남의 서원들에 비해 서원에 관한 고증 자료가 부족하고 사진자료 등도 거의 없는데다 영남의 서원들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리는  반면, 돈암서원 주변은 개발이 이루어져 서원을 찾는 전문위원들과 예비실사자들로부터 여러 가지  지적을 받으면서 시공무원들과 함께 풀이 죽었다.

하지만 논산시와 돈암서원은 1854년과 1874년에 논산지역에는 큰비가 와 돈암서원을 현장소로 이전 할 수 밖에 없는 경위 등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 유네스코에 증거로 제시, 이를 유네스코가 받아들여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됐다.

김선의 장의는  "천재지변은 나라에서도 다스리기 어려운데 서원의 유학자들이 축대를 쌓고 서원을 옮긴 것이 문제가 된다면 진정 어느 것이 서원의 진정성인가?"라며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정면으로 반문할 자신이 생겨나 돈암서원 유네스코 등재 준비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이코모스 현장실사 당시에도 돈암서원은 여전히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사항의 충실한 실행을 전제로 하는 조감도를 펼쳐 보이고 질문마다 상세히 응답하는 등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논산시의 의지를 보여주었더니 현지실사측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술회한다. 

돈암서원은 강학 건축물의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축물의 현판과 목판 등은 예학(禮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응도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원 강당으로, 유교적 고례를 재해석해 완성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돈암서원에는 현재 보물 제1569호인 응도당과 사우, 장판각 등의 건물과 하마비, 송덕비 등이 남아 있으며,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돼 있다.

돈암서원이 외적 인프라에서 얻지 못했던 고득점은 소프트웨어격인 운영면에서 보충하였다. 공립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는 과거 시험을 염두에 두고 지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이에 비하여 사립학교인 서원은 지식교육은 물론 인성(禮)교육에 비중을 더 두었고 사우(祠宇) 성격도 강했다. 돈암서원은 서원의 기능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한 홍보 기능 강화는 물론 돈암서원만의 다양한 문화 체험 콘텐츠를 집대성하여 전국적으로 서원활성화 사업의 모델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돈암서원은 세 번 기사회생한 셈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페령에서도 살아남았고, 대자연의 홍수도 피하였다. 

돈암서원은 1880년 현재의 장소로부터 1.7㎞ 떨어진 곳에서 이전해 왔다. 그 후 1925년 돈암서원 원정비를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 1971년 응도당을 이전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는 자칫 1차 시험도 못치를 뻔하였으나 논산시의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3전4기의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3건이 이름을 올린 후 이번 한국의 서원 9곳까지 총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전일보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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