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市 승격 16년 전원·문화·국방도시 향한 '위대한 여정'이었다

[계룡시 승격 16년 발자취]

화요저널 | 기사입력 2019/05/09 [23:25]

계룡市 승격 16년 전원·문화·국방도시 향한 '위대한 여정'이었다

[계룡시 승격 16년 발자취]

화요저널 | 입력 : 2019/05/09 [23:25]

[계룡시 승격 16년 발자취] 

계룡市 승격 16년 전원·문화·국방도시 향한 '위대한 여정'이었다 

 

  • 지역 각계각층 단합한 계룡시 설치
  • 당시 논산시의장이었던 최홍묵 시장 시의회 설득해 설치특위 구성 끌어내, 국회 행자위 위원에 끈질긴 협조 당부도
  • 2003년 9월 계룡시 '본격 자치시대' 개막, 같은해 11월 최홍묵 초대 민선시장 취임

 

 

◆계룡시 탄생전 계룡출장소

 

충청남도 계룡출장소이면서 행정구역은 논산시 두마면이 지난 2003년 9월 19일 계룡시로 승격되면서 전원·문화·국방 모범도시로 탄생됐다. 올해로 개청 16주년을 맞은 인구 4만 3000명이 넘는 계룡시, 본지에서는 계룡시가 탄생되기까지의 과정과 발자취, 시승격에 큰 역할을 한 주역들을 알아본다. 

해방이후 신도안에 정감록 사상등으로 각종 종교단체가 급증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962년 5월 31일 논산군 조례 제 32호로 두마면 신도내 출장소가 설치됐다. 그 이후 1983년 620사업으로 신도내 주민 1318세대 5550명이 이주함에 따라 논산군 조례 제 961호로 신도내 출장소가 폐지됐다. 1984년 620사업으로 신도안 주민이 모두 타 지역으로 이주하고 계룡대가 들어섬에 따라 1989년 1월 1일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를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과 함께 군인가족의 행정편의 도모를 위해 1989년 1월 1일 두마면 남선출장소가 설치됐다. 이어 1989년 7월 계룡대 입주와 더불어 1990년 2월 24일 충청남도 계룡출장소가 설치되면서 남선출장소는 폐지되고 계룡출장소 남선지소가 개소됐다.

계룡출장소의 주요 업무는 계룡신도시 건설 업무와 충청남도 위임 사무, 논산군으로부터 수탁받은 고유업무를 수행함으로서 사실상 시의 기능을 하고 산하에 두마, 남선지소에서는 호적과 주민등록 등 법정 민원업무를 하게 됐다. 관할지역은 논산군 두마면 15개리에 인구는 3495세대 1만 1852명으로 직제는 출장소장을 비롯해 2담당관 4과 15계, 2지소, 정원 75명으로 출발했다.

 

 

◆계룡 신도시 건설

 

1990년 1월 17일 노태우 대통령이 충청남도 방문에서 계룡대는 국방의 중추시설로 3군본부 이전이라는 안목을 떠나 외국의 선진사례를 살려 특수성 있는 신도시로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충청남도에서는 각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990년 2월 27일 계룡출장소를 개소하고 본격적으로 택지와 도로,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에 착수했다. 계룡신도시 건설의 주요사업은 시가지 개발과 도시기반시설, 생활편익사업등에 총 3조 1000억원을 투자, 2011년까지 인구 인구 15만명을 수용하는 도시로 조성하는 계획으로, 당시 20년의 중장기 사업이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은 국가재정형편상 그리고 IMF등의 이유로 지연되고 인구유입도 늦어져 계획대로라면 인구 10만명이 넘어야 하는데 2002년말 인구 3만명 선에 막 접어든 상태였다. 이는 시 설치 기준에 못미치는 인구로 시승격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

 

◆당시 논산시의회 의장이던 최홍묵 시장

 

계룡시 설치는 계룡출장소의 주도적 역할과 계룡신도시발전협의회, 계룡대, 논산시의회등 지역 각계각층이 단합해 얻어낸 합작품이다. 특히 계룡출장소가 충청남도 직할기관이면서 행정구역상 논산시 두마면을 계룡시로 승격시키기 위해서 논산시의회에서도 '계룡시설치특별위원회'를 구성, 위원장에 최홍묵 의원을 선임하고 행자부와 충남도, 계룡대등을 방문해 특례시 설치를 건의하는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같은 논산시의회 의원들의 계룡시 설치에 대한 동참은 최홍묵 시장의 끈질긴 설득과 노력이 얻어낸 결과로 평가됐다. 당초 논산시 시민단체와 의원들은 계룡시 설치로 논산시 면적 축소는 물론 3만명의 인구가 감소돼 지방재정이 위축되고 계룡 인근지역까지 흡수당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 왔다. 

하지만 당시 논산시의회 두마면 의원이었던 최 시장은 계룡시 설치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각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 설득해 결국 논산시의회에서 '계룡시설치특위'를 구성, 시 설치에 동참하도록 했다.

특히 계룡시의 설치 여부는 국회 행자위법안소위 위원들에게 달려 있다고 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그래서 출장소 직원들과 최 시장은 위원들을 기여코 설득해야만 가능하므로 법안심사를 앞두고 의원사무실과 지역구등을 차례로 방문, 당위성을 설명하며 끈질기게 설득해 왔다. 2003년 6월 18일 오후 3시 행자위 법안심사소위개회에 앞선 오전 11시부터 지역민과 출장소 관계자, 최 시장은 소위원들을 대상으로 법안 통과를 거듭 부탁했고, 심대평 충남지사도 지역의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국회를 찾아 간곡한 협조를 당부했다. 이러한 결과 '계룡시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등에 관한 법률안'은 원안대로 통과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국회 본회의 통과…'계룡시대' 열리다

 

2003년 6월 30일은 계룡시 설치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었다. 국회는 제 240회 임시회 제 7차 본회의를 열어 계룡시 설치를 위한 '지방자치법중개정법률안'과 '충청남도 계룡시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등에 관한 법률안'을 표결을 통해 승인했다. 이로서 충청남도는 물론 계룡지역민의 14년 숙원이 해결됐으며, 향후 2개월내인 9월말에 개청식을 갖고 자치단체로서 기본 골격을 갖춘 후 10월 말까지 초대시장, 시의원을 선출해 계룡시로 본격 출범하게 됐다.

통과직후 심대평 충남지사는 "충남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됐다"며 "군사·전원도시로서의 발전은 물론 인구 5만명 정도의 충남 홍보도시로 가꾸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고, 최홍묵 시장, 당시 논산시의회 의장은 "3만여 주민들 덕분에 계룡시 시대를 맞게 됐다"면서 "충청권 중추도시, 세계적인 국방모델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역사적인 계룡시 개청…지방자치시대 개막

 

계룡시 개청 하루전에는 시내 곳곳에는 자치시대를 알리는 애드벌룬과 대형 아치를 비롯한 개청축하현수막이 게시됐고, 시청에서는 막바지 개청행사 준비에 공무원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시청 마당에서 열린 개청축하 전야제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는 등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배일호·김국환 씨 등 인기연예인들의 공연과 시민노래자랑 등에 이어 축포 2000발이 발사되면서 개청할 축제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2003년 9월 19일, 계룡시가 본격 자치시대를 개막했다. 

이날 시청앞 광장에서는 심대평 충남지사, 권오룡 행정자치부차관보, 전용학, 유한열 등 지역국회의원과 3군참모차장,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청식을 갖고 자치시대를 공식 선포했다. 시는 이날 개청식을 통해 전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군사·전원·문화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도시기반시설·생활편익시설등을 확충하고 관광계획을 성실히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민선초대 최홍묵 시장 취임

 

2003년 11월 1일 계룡시청 광장에서 최홍묵 초대 민선시장 취임식을 갖고 민선 자치시대의 장을 열었다. 이로써 국회에서 '계룡시 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등에 관한법률'이 통과된 후 대통령 공포, 기구 및 정원 확정, 개청식, 시장 및 시의원 선거등 시설치를 위한 모든 절차를 마무리 했다. 당시 최홍묵 시장은 취임사를 통해 "2년 8개월 남은 임기동안 시민보다 먼저 걱정하고 시민들이 모두 즐거워 한 후 가장 나중에 즐거워 하겠다는 각오로 시정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최 시장은 또 '상록계룡시건설2030비젼'도 밝혀 그린도시 건설을 약속했다. 한편 시정의 동반자인 의회도 출범하게 됐다. 초대 계룡시의회 의장은 두마면 출신 이지웅 의원, 부의장은 남선면 출신 이기원 의원과 금암동 출신 강흥식 의원등 7명으로 구성돼 11월 6일 개원식을 갖고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돌입했다. 계룡시는 14년간의 출장소 시대를 마감하고 진정한 민선 지방자치시대를 활짝 열게 된 것이다. 

 

충청투데이 김흥준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기획/인터뷰 많이 본 기사